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기사

순수라는 미술의 재료, Children Artist 한예롤

by 인생은 덕질 2015. 4. 14.

■ WORK&PEOPLE

 

순수라는 미술의 재료

Children Artist 한예롤

 

 

이태원 보광동 언덕길. 허름한 골목 상가와 소박한 카페를 지나면 작가 한예롤의 아뜰리에가 있다. 이곳은 그녀의 작업실이자 아이들과 그림으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옥상에 오르면 남산타워가 보이고 창으로 빛이 가득 들어오는 아뜰롤리에(L'ATELOLIER de Yelol Han). 어느 겨울, 한예롤 선생님을 만났다. 글|이종열 편집장

 

타피5 Topped ⓒ Yelol Han

 

칠드런, 한예롤

한예롤에게 크레파스는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같다. 가지런히 놓인 크레파스의 색깔과 냄새가 좋았던 아이는 베란다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크레파스를 싸놓고는 자신만의 작업실을 갖게 된다. 베란다 작업실. 그곳에서 드로잉과 수많은 그림을 그리며 작가를 꿈꿨다.

 

그녀의 아빠는 일요일마다 전시를 구경시켜 주었다. 여러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면서 보고 느끼게 했다. 어느 날, 꼬마 한예롤은 북한 어린이가 그린 그림에 충격을 받는다. 이른 바 컬러 쇼크. 과감하게 사용된 색에 매혹당한 그녀는 ‘저 언니보다 잘 그리는 화가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림4 Scream ⓒ Bryan Lee, 8 years old

 

낙제생, 한예롤

그러나 그녀는 낙제생이었다. 학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학원에서도 미술에 대한 가망이 전혀 없는 아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발상과 표현>을 시간 안에 한 번도 완성해내지 못했어요. 정기구독 하던 <아트앤디자인> 그림도 스크랩 해가며 했지만 아무리 해도 안됐어요. <발상과 표현> 그림들이 나를 덮치는 꿈을 꾸고 울기도 여러 차례였죠. 미술을 정말 하고 싶은데 한 번도 잘해내지 못했어요.” 그녀는 디자인실기에 어울리지 않는 학생이거나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그려내야 하는 입시미술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타피2 황조롱이새 ⓒ Ji Woo Kang, 6 years old

 

채집가, 한예롤

낙담하던 그녀를 바꾼 건 아빠였다. 학교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본인이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라며 예술 후원금을 주셨다. “보고 싶은 책, 그리고 싶은 것들 다 사오라며 아빠가 30만원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그녀는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 다시 개념을 세우기 시작한다. 쓰던 재료도 다 바꾸었다. 일차적인 재료는 집에서부터 찾기 시작했다. 아빠 구두약, 락스 등 재료가 되지 않을 것은 없었다. “기존에 흔히 사용하던 재료를 뒤로하고 재료를 채집하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 그리는 것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에 대한 믿음이 생긴 그녀는 실기대회에 평소 하던대로 수성펜이나 구두약 같은 한 가지 재료만 가지고 참가했다. 신기하게도 많은 수상결과로 이어졌다. 한 대학의 총장은 이런 그녀를 두고, 외국에서 살다온 학생인 줄 알았다며 회화 쪽을 적극 권유하기도 했다.

 

타피4 고흐였을 것이다 ⓒ Yelol Han

 

선생님, 한예롤

그녀가 처음 아이들을 만난 건 2008년. 부담 없이,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쉬운 접근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날 ‘상상동물 그리기’ 수업에서 그녀의 자만은 보기 좋게 부서졌다. “한 학생의 그림은 도저히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물었더니, 「나비 날아가는 향기 그린 건데…」라고 말하더라구요. 소름이 확 끼쳤어요.” 당시, 예쁜 그림 좋아하던, 그림 정체기에 있던 그녀에게,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거구나’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뒤로 그녀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아이들의 창의력의 세계에 감탄했고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뭔가 줄려면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오랜 미술의 역사가 있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돈도 없으면서.

 

그림7 Sunflowers ⓒ Yoon Seo Kim, 8 years old

 

프랑스, 한예롤

파리의 아뜰리에서 그녀는 일반 동네 시민들이 함께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미술은 이제껏 그들이 살아온 것을 그림에 옮겨보겠다는 자연스런 행위예요. 그냥 그리고 싶은 순수한 본능에 의한 작업들을 하죠. 비디오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꼴라주도 하고, 조각도 하죠. 그곳에선 누드모델도 동네사람들이 신청을 해요. 프랑스의 미술에 기여를 하겠다는 마음인 거죠. 쭈글쭈글 아저씨부터 배나온 아저씨, 임산부까지 다양해요. 이렇게 창작된 다양한 작업들을 보면 프랑스 미술의 현재를 볼 수 있을 정도예요. 틀렸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으니 저도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녀는 거기서 주로 화선지에 세필로 유화 작업을 했다. 물감 살 돈이 없던 이유에서다. “프랑스에서는 미술 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재료(유약가루)를 제공해줘요. 유약가루를 사용하려면 오일이 필요하죠. 하지만 오일이 비싸요. 그래서 저는 집에 있는 올리브유를 사용해보았어요. 식용유를 써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해바라기유를 쓰죠.” (웃음)

 

당시 그녀는 용돈을 겨우 모아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형편이었기에 재료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재료에 눈을 떴다. 정원에 있는 산딸기를 터뜨려서 재료로 사용해 보기도 하고 친척이 보내준 현미 녹차를 쓰기도 했다. 또, 낙엽을 전자렌지에 말려 빻아서 개어서 쓰는 등 매일 빻는 게 일이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미술재료가 될 수 있어요.”

 

 

아뜰롤, 한예롤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칠드런 아트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에요. 선생님 방식대로 가르치기만 하면 그림이 다 똑같아 지죠. 저도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 있는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아요.” 그녀는 여전히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받아 적으며 배운다.

 

타피3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데에 있어요ⓒ Ji Woo Kang, 6 years old

 

칠드런 아트(Children Art)

칠드런 아트는 내가 새롭게 만든 장르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칠드런 아트는 아이들과 함께 그들만의 이야기를 끌어 올려 아이들이 직접 작업을 하게하는 모든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최대한 자신(아이)만의 작업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 아이들은 가장 신비롭고, 예측을 불허하며, 무한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 아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탄생되는 작업의 결과물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이롭다. 아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자 시작이다.

세계에 들어간 후에는 이미지를 함께 읽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전개시키면서 아이 그림에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티스트 ‘한예롤’과 한명의 아이가 만나 공동작업을 해야한다. 나는 아이들과 작업할 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라는 본질을 미술의 재료로 사용하게 한다.

아이들은 나의 뮤즈이며, 파트너이자 아티스트이다.

- 한예롤

 

 

한예롤 tip.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Blind Contour Drawing)

“보이는 것을 그리고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 두려웠기에 눈을 감고 그려보기 시작했어요. 종이를 보지 않고 그려내는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지하철이건 버스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시도를 했었죠. 본능에 따라 그리다보니 글씨체가 각기 다른 것처럼 그림체도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중에는 보이는 것을 똑같이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게 되었죠. 산을 넘고나니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타피6 Topped ⓒ XYL

 

한예롤 tip2. 타피(Topped)를 통한 스토리텔링

“자연물을 채집해 보세요. 그런 후 낙엽, 솔방울, 나뭇가지 등의 자연물로 타피(올려놓다)를 하는 거예요. 그저 올려놓기만 하면 되요. 친구나 엄마랑 해봐도 좋아요. 이렇게 저렇게 올려놓으며 스토리텔링을 해 나가는 거예요. 타피를 하고 나면 상상력 증진에 도움이 되고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거예요. 이처럼 남들이 해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노력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아뜰롤리에 www.yelolhan.com

 

 

 

* 월간 아트앤디자인 2014년 3월호 기사(글과 이미지 일부 다름)

 

 

 

 

 

 

 

 

 

댓글